시멘트의 역사우리나라 시멘트의 역사


해방전
  • 일본의 통치하에 우리 시멘트 산업은 청일·러일 전쟁, 제1차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군수산업으로 전환, 급속한 발전을 맞게 됨
  • 승호리에 첫공장을 세운 이후 광복전까지 일본 오노다(小野田)사 등 3개사 6개공장에 연간생산능력 180만톤의 시설을 갖춤
광복~1961년
  • 당시 우리나라의 주요산업시설은 대부분 북한에 편재되어 있었고(삼척공장만이 유일한 남한 소재) 광복과 6. 25동란을 거쳐 거의 모든 생산시설이 파괴된 상태에서 1952년에서야 서서히 정상궤도를 찾기 시작하였으며 1957년 후반 문경공장이 새로 가동되면서 시멘트 산업의 새로운 면모를 갖춰 나가기 시작함
1962~1971년
  • 1961년 2개사(동양, 대한(현 쌍용양회의 전신))에 불과했던 시멘트업계는 1, 2차 경제개발계획이 끝난 1971년에는 8개사(유니온 포함)로 늘어났으며 연간시멘트 생산은 51만톤에서 687만톤(13.5 배↑)으로 증가하여 일약 세계 제20위의 시멘트 생산국으로 발돋움
  • 1964년부터는 만성적인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 1971년에는 100만톤이 넘어서 제11위의 수출국으로 발돋움
  • 경제개발추진과정에서 전략산업으로 급속한 성장을 하기 위해 업계단결의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같이하고 1963년 7월 1일 한국양회공업협회를 탄생시킴
1972~1982년
  • 그동안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양적성장에 치중했으나 70년대에 들어서는 양질의 균형 성장을 추구하는 한편 기술개발·환경개선 등에도 큰 진전을 보였음
  • 1976년부터 5종시멘트(내황산염시멘트), 2종시멘트(중용열시멘트)를 생산하는 등 품종의 다양화에도 상당한 진전
1983~1992년
  • 이미 선진국 수준에 다다른 우리나라 시멘트 산업은 보다 고도화된 기술수준과 이를 바탕으로 한 조강, 초조강, 중용열, 메이슨리시멘트, 알루미나·칼라시멘트 등 다양한 용도의 신제품 개발은 물론 사업의 다각화와 국제화 등으로 업무영역을 넓혀나가게 됨
1993~1999년
  • 주택 200만호 건설등 건설경기부양에 따른 시멘트수요의 급증으로 활황을 구가하던 시멘트산업은 1997년말 IMF구제금융이라는 초유의 경제위기에 접어들면서 불황에 빠져들자 설비 증설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과 영업환경 악화로 인해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하여 한라시멘트의 부도등 업계전체가 어려움에 빠졌으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극복에 전력을 기울였음
2000~현재
  • IMF구제금융,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 의지 등으로 건설경기가 회복되고 업계의 자구노력의 성공 으로 경영실적이 호전되면서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음. 이후 다국적기업인 라파즈사가 한라시멘트를 인수하여 라파즈한라시멘트로 출범하였고 쌍용양회도 일본 태평양시멘트사와의 공동출자계약을 통해 공동경영을 함에 따라 우리 시멘트 산업도 외국 메이저사들의 진출시도로 새로운 환경변화에 직면하게 되었음
  • 최근에는 수입 시멘트의 증가, 슬래그 등 혼화재의 사용비중 확대, 스틸하우스 등 대체재의 시멘트 수요잠식 등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점차 환경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친환경 산업으로의 역할 강화가 요구되는 등 향후 시멘트 산업의 활로를 새롭게 모색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로 접어들고 있음